기억과 망각

영화 2016. 8. 25. 17:54

Trinh T. Minh-Ha, Forgetting Vietnam, 2015


서정적 영상, 음악, 문구들. 베트남의 역사를 어떻게 잘 잊을 것인가, 그러나 사실은 잘 기억하고 정리할 수 있을까. 

달라진 것은 없다. 처음으로 바다를 건나 배가 들어오던 날에서부터, 베트남은 연약함의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그 참담한 기억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잘 잊을 수 있을까. 잘 잊기 위해서는 잘 알아야 한다. 

불규칙한 화면비, 베트남의 도시를 배회하는 카메라. 물의 이미지, 물의 승천하고 하강하는 이미지. 

대체로 느린 선율. 그러나 아이들의 얼굴, 도시의 몇몇 이미지들에서 사용된 빠른 템포의 베트남 대중가요. 

베트남의 도시와 풍경과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사적 감정을 공적인 역사를 환기시키는 방법으로 이야기하는 것. 

그 친밀함의 언어가 이 역사를 다시 써내려 가는 것이 좋다. 



Rithy Panh, France Is Our Mother Country, 2015


파운드 푸티지 필름. 프랑스 무성영화 형식의 사이 자막을 빌려 아카이브 필름과 이에 대한 해석을 바탕으로 한 작품.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 프랑스 식민지의 영광에서부터 폐퇴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사이 자막의 용도는 앞으로 나올 장면을 설명해주기보다 지속적인 아이러니를 제공하는 방식. 

지표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캄보디아일까, 인도네시아일까, 어디일까. 차이로서의 식민지가 아닌 식민자의 시선에서 그 차이들이 무화되는 것 같은 느낌. 의도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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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결정권

idea 2016. 8. 25. 17:44

Scene


임신중인 여자친구가 사고를 당했다. 둘은 오랫동안 동거를 했고 결혼하기로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다하지 못한 채 여자는 뇌사상태에 빠져버렸다. 병원에선 여자는 살릴 수 없지만, 기계장치에 의지해 생명을 연장한다면 아이는 살릴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남자는 그렇게 하기를 원했지만 그 순간 여자의 친오빠가 나타났다. 그리고 아내를 위해 존엄사를 선택하기를 주장했다. 문제는 법원으로 옮겨졌다. 친권자인 친오빠가 실제적인 보호자이기 때문에 여자와 아이의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남자가 아닌 친오빠라는 게 법적 근거로 등장했다.  


드라마 [굿와이프]에 등장했던 에피소드 중 하나다. 이 법정 에피소드에서의 관건은 누가 타인의 죽음을 결정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이다. 결혼을 약속한 정인인가 혹은 친권자인 오빠인가?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은 뱃속에 있는 아이 때문인데, 태어나지 않은 아빠의 권리를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겹치면서 이야기의 전개는 더욱 미궁 속으로 빠진다. 하지만, 그 어느 경우에도 여자도 아이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매듭지을 수 없다. 


몸의 반대말은 정신이나 마음이 아닌 몸이 아니게 되는 것, 즉 죽음이다 . 그렇다면 몸의 결정권자는 누구인가? 몸이 사그라드는 과정, 죽음 이후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육신을 처리하게 되는 것은 누구인가? 

이 몸뚱아리의 처리 과정이 나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닐 때, 그 몸의 결정을 위임받는 자들은 누구인가? 가족이거나 경찰이거나. 행려자의 경우라면 말이다. 


사법권력과 더불어 이 친권, 계약 관계에서 발생하는 권력은 그래서 무지막지하다. 

가족이 절대적 구속력을 가지는 것은 나의 몸의 존재 여부를 결정할 권리를 사법기관으로부터 양도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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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게 다시 서울시향 정명훈의 문제로 확대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정명훈이 명성에 비해 돈을 많이 받느냐 아니냐는 논의할 거리도 아니다. 

그는 '업계' 최고의 지휘자이고 업계 최고의 대우를 받는 것이 맞다... 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정설이다. 나는 그가 지휘하는 것을 단 한 번도 직접 들은 적이 없으니 뭐라 할 말도 없고 듣는다 한들 다른 지휘자들과 비교를 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냥 내가 이 논란을 보다보니 궁금한 것은 예술의 가치라는 것이다. 

작품의 가치.. 예술노동자의 가치... 상품화의 과정... 

시장이 있기 전, 그들이 귀족들과 부르주아들의 후원을 받는 피고용의 입장일 때는 좀 더 분명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 의해 예술이, 예술노동자가 판매되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 가치를 어떻게 매길 것인가? 지식노동도 마찬가지겠으나 예술노동은 더더욱 어렵다. 취향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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